디지털 유산 처리, 이대로 괜찮은가? 개인정보보호법의 사각지대

누구나 하루에도 수십 번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이용해 디지털 흔적을 남깁니다. 사진, 메시지, 이메일, 클라우드, 유튜브, 블로그, SNS 계정… 우리는 디지털 공간 속에서 ‘또 다른 자아’를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처럼 방대한 **디지털 자산(디지털 유산)**이 사망 이후에는 어떻게 처리되어야 할까요?
정리되지 않은 디지털 유산은 때로는 유가족 간 분쟁, 개인정보 유출, 사생활 침해로 이어지며, 사회적인 문제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현재 대한민국의 개인정보보호법에는 사망자의 정보에 대한 명확한 보호 규정이 없다는 점입니다. 디지털 유산 처리 과정에서 드러나는 법의 사각지대, 과연 이대로 괜찮을까요?


디지털 유산이란 무엇인가?

디지털 유산(Digital Legacy)이란 사망자가 생전에 생성·저장한 모든 디지털 형태의 정보와 자산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항목이 있습니다.

  • 이메일, 문자, SNS 메시지
  • 클라우드 저장 자료(사진, 영상, 문서 등)
  • 유튜브 채널, 블로그 콘텐츠 및 수익
  • 암호화폐 지갑, NFT
  • 쇼핑몰 계정, 게임 아이템, 온라인 포인트

이러한 디지털 유산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사적 정보이자 자산, 그리고 때로는 타인의 정보까지 포함된 복합적 성격의 콘텐츠입니다.


사망자의 정보, 개인정보보호법에서 보호받을까?

현행 대한민국 **개인정보보호법(2025년 기준)**은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습니다.

“개인정보란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서…”

즉, 사망자는 법적 보호 대상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인의 계정이나 데이터가 어떻게 관리되는지에 대한 기준이 법적으로 모호하며, 실무적으로는 각 플랫폼의 내부 정책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됩니다.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문제들

1. 유가족 간 계정 접근 갈등

사망자의 클라우드나 SNS에 중요한 사진, 영상이 남아 있는데
누가 그 계정을 열어보고, 정리하고, 삭제할 수 있는지에 대해 법적 권한이 불분명합니다.

예) 장남은 삭제를 원하고, 차녀는 보존을 원할 때 → 합의가 되지 않으면 갈등 발생

2. 정보 유출 및 해킹 위험

사망자의 계정은 장기간 로그인되지 않으면 보안 취약 상태가 됩니다.
해커들이 사망자 계정을 악용하여 스팸, 피싱, 사기 등에 사용하거나 사적인 콘텐츠가 유출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3. 타인의 개인정보 침해

사망자의 메시지나 이메일에는 살아 있는 타인의 정보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유족이 이를 열람·보관·공유할 경우, 제3자의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플랫폼별 처리 정책에만 의존하는 현실

한국에는 아직 ‘디지털 유산 처리에 대한 통합 법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유족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사망자 계정을 정리하게 됩니다.

구글 (Google)

  • ‘비활성 계정 관리자(Inactive Account Manager)’ 기능을 통해 생전 지정한 사람에게 정보 일부 공유
  • 지정하지 않았다면, 유족은 사망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등 제출하여 접근 요청 가능 (제한적 승인)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Meta)

  • 유족 요청 시 추모 계정 전환 또는 계정 삭제 가능
  • 생전 ‘추모 계정 관리자’ 미지정 시, 일부 기능 제한됨

애플 (Apple)

  • ‘디지털 유산 연락처(Digital Legacy)’ 지정 시에만 접근 가능
  • 법원 명령 없이는 사망자 iCloud 접근 불가

네이버 / 카카오 등 국내 플랫폼

  • 유족 요청 시 계정 삭제는 가능하나, 데이터 열람은 제한적
  • 접근 권한은 대부분 부여되지 않으며, 명시적 유언장 또는 법원 판단이 없으면 처리 곤란

👉 결국, 각 플랫폼의 자율 정책에만 의존하는 불완전한 구조입니다.


해외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미국: RUFADAA 법안 도입

미국은 일부 주에서 **‘디지털 자산 접근법(RUFADAA)’**을 통해 상속인에게 디지털 유산 접근 권한을 법적으로 보장합니다.
단, 고인의 생전 동의 또는 유언장이 있을 경우에만 접근 가능

독일: 판례로 상속 인정

2018년, 독일 연방대법원은 사망자의 페이스북 계정을 부모에게 상속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 디지털 계정도 일반 유산과 동일하게 상속 가능하다는 입장

프랑스: 사망자 디지털 권리 보장

프랑스는 민법에서 사망자의 디지털 자산 처리 권한을 유족에게 일부 위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 국내와 달리, 법률 수준에서 사망자 정보의 처리 방향을 정하고 있다는 점이 차이점입니다.


필요한 것은 제도 정비와 국민 인식 개선

디지털 유산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사망자의 개인정보는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이것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법과 윤리의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제도 개선이 시급합니다:

  • ✅ 사망자 개인정보의 일정 기간 보호를 위한 법적 근거 마련
  • ✅ 유족의 접근 및 삭제 권한을 정하는 명확한 법률 제정
  • ✅ 디지털 유언장 활성화 및 표준 양식 도입
  • ✅ 플랫폼 사업자들의 처리 기준 일원화 및 투명성 강화

결론: 디지털 사후 관리, 이대로는 부족하다

사망자의 디지털 유산은 방치되면 개인정보 유출, 가족 갈등, 보안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행 법제도는 이를 명확히 처리하지 못하고 있으며, 가족과 플랫폼에 모든 부담을 떠넘기고 있는 구조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변화입니다.

  • 국가 차원의 디지털 유산 통합 법률 제정
  • 개인 차원의 디지털 유언장 준비
  • 플랫폼의 사망자 계정 투명 처리 정책 강화

디지털 시대, 삶의 끝은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마무리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후에도 개인정보와 삶의 흔적이 존중받는 사회, 지금부터 만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