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반도체 표준은 모든 기업이 똑같은 규격을 지키도록 강제하는 ‘법전’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JEDEC(국제반도체표준협의체)이 확정한 HBM4(JESD270-4) 표준은 조금 특별합니다. 데이터가 지나가는 ‘길(Interface)’은 엄격히 통일하되, 그 길을 관리하는 ‘관리소(Logic Die)’ 내부 설계는 기업의 자율에 맡기는 유연함을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1. ‘Interface는 표준, Logic은 자유’
HBM4 표준의 핵심은 하드웨어 호환성을 보장하면서도 성능 차별화를 허용하는 것입니다.
- 표준의 영역: 2048-비트 인터페이스 폭, 핀 배치(Pin-out), 패키지 크기 및 두께(775$\mu m$) 등은 모든 제조사가 동일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엔비디아 GPU에 삼성이나 하이닉스 칩을 갈아 끼울 수 있으니까요.
- 자율의 영역: 로직 다이 내부의 연산 회로, 전력 관리 스케줄러, 오류 정정(ECC) 알고리즘 등은 제조사나 고객사가 마음대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2. ‘Semi-Custom’이 가능하게 된 배경
왜 JEDEC은 표준의 빗장을 일부 풀었을까요? AI 모델의 다양성 때문입니다.
- 고객사 IP 삽입: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빅테크 기업은 자사 AI 연산에 최적화된 특수 회로(IP)를 로직 다이에 직접 심기를 원했습니다.
- 표준의 유연함: JEDEC은 이를 반영하여, 베이스 레이어를 단순한 인터페이스 칩이 아닌 ‘고객 맞춤형 로직 칩’으로 정의했습니다. 덕분에 표준 제품이면서도 성능은 제각각인 ‘세미 커스텀’ 제품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3. 표준을 뛰어넘는 제조사들의 성능 경쟁
표준은 ‘최소한의 약속’일뿐, 최선은 아닙니다. 2026년 현재 제조사들은 표준 수치를 훌쩍 뛰어넘는 제품을 내놓고 있습니다.
- 속도의 한계 돌파: JEDEC HBM4 표준 속도는 8Gbps 수준이지만, 삼성전자는 이미 이를 46% 상회하는 11.7Gbps에서 최대 13Gbps까지 구현하며 표준 이상의 성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 대역폭의 격차: 표준 대역폭인 1.5TB/s를 넘어 단일 스택당 3.3TB/s에 육박하는 괴물 같은 성능이 실제로 양산되고 있습니다.
[비교] HBM4 표준 vs 실전 세미 커스텀 (2026년 기준)
| 항목 | JEDEC 표준 규격 | 제조사별 세미 커스텀 (실제) |
| 인터페이스 폭 | 2,048-bit (고정) | 2,048-bit (동일) |
| 데이터 전송 속도 | 약 8.0 Gbps | 11.7 ~ 13.0 Gbps |
| 로직 다이 기능 | 기본 인터페이스 제어 | PIM 연산, 맞춤형 보안 IP 등 |
| 패키지 높이 | 775 $\mu m$ | 제조사 공법에 따라 미세 조정 |
■ 핵심 요약
- HBM4는 외부 규격은 표준을 따르되 내부 설계는 자율에 맡기는 ‘세미 커스텀’ 방식을 채택했다.
- 이를 통해 빅테크 기업들은 표준 HBM4 패키지 안에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로직 설계를 심을 수 있게 되었다.
- 제조사들은 표준 규격을 가이드라인 삼아, 그 한계를 넘어서는 압도적인 대역폭과 속도 경쟁을 벌이고 있다.
■ 다음 편 예고
표준 안에서 자유를 얻었다면, 이제 그 자유를 뒷받침할 물리적인 기술이 필요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하이브리드 본딩과 로직 다이: 16단 적층 시대를 가능케 하는 핵심 공정 분석’을 통해 제조 공정의 정수를 다뤄보겠습니다.
■ 질문
표준 규격 안에서 각 기업이 개성을 발휘하는 ‘세미 커스텀’ 방식은 소비자에게 이로울까요? 아니면 호환성 문제로 인해 시스템 복잡도만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